一键重装系统工具 | U盘启动盘制作工具 | 误删文件恢复软件 | 硬盘数据抢救专家 | 电脑蓝屏修复助手 | C盘空间清理神器 | 电脑驱动离线安装工具 | 微信聊天记录恢复工具 | 照片误格式化恢复 | 电脑密码破解清除工具 | 系统崩溃紧急救援盘 | 电脑加速优化大师 | 电脑开不了机怎么重装系统 | 回收站清空了怎么恢复 | 硬盘分区丢失数据恢复 | 电脑卡顿重装系统有用吗 | U盘插入提示格式化数据恢复 | 电脑中毒文件被隐藏恢复 | 忘记电脑开机密码怎么办 | 新硬盘分区对齐工具 | 旧电脑装Win10流畅工具 | SD卡照片删除恢复免费版 | 移动硬盘打不开提示损坏修复 | 电脑无故重启系统修复工具 | 电脑小白一键重装神器 | 程序员电脑环境配置助手 | 设计师电脑字体/素材恢复工具 | 网吧网管系统维护工具箱 | 财务人员电脑发票备份恢复 | 学生党免费电脑系统安装包 | 电脑维修师傅必备工具盘 | 游戏玩家电脑性能优化助手 | 办公白领误删文档恢复软件 | 自媒体视频素材恢复工具 | 网课录制视频损坏修复工具 | 最好的U盘PE系统排名 | 数据恢复软件哪个最强 | 免费电脑助手与收费版区别 | 国产装机工具哪款无广告 | 离线版驱动助手推荐 | 轻量级电脑优化工具对比 | 支持NVMe驱动的PE工具 | 带网络功能的应急启动盘 | 2026最新版万能装机工具 | 支持Win11 24H2的PE工具 | 最新免激活系统重装工具 | 2026数据恢复软件破解版合集 | 纯净无捆绑装机助手V3.0 | 支持苹果M芯片的电脑助手 | 秋季更新版系统维护工具箱 | 电脑系统崩了怎么用U盘把重要资料拷贝出来 | 重装系统前哪些文件夹必须备份 | 固态硬盘误格式化还能恢复数据吗 | 如何制作一个既带PE又能存数据的双分区U盘 | 电脑总是弹窗广告用什么助手彻底拦截 后台管理
📢 欢迎访问系统之家!所有资源均经过安全检测。

기자 히스토리

发布时间:2026-09-21 | 浏览:1
📥 下载地址(文章开头)
一键制作系统U盘仅需下载到电脑后接上U盘点一下全自动完成。
2014년5월 '비밀(BEMIL)' 운영자 유용원 · 서울대 경제학과(1987년) 졸업 ·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방문연구원(1996년) · 고려대 일민 국제관계연구원 최고위 과정 수료 · 조선일보사 입사(1990년) ·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1993년 이후 1996~97년 미국 미주리대 연수기간을 제외하곤 줄곧 국방부 담당, 현직 최장수 국방담당기자) · (사)한국국방안보포럼 기조실장(현) · 육군·해군·공군 자문위원(현) · 한국방위산업학회 대외위원장(현) ·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1994) · 제6회 한국언론대상(2002) · 제1회 언론인 홈페이지 대상(2002) · 조선일보 최다 사내 특종상(40회) ·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공저) · 무기 바이블 1,2(공저) · 신의방패 이지스(공저) 외 · 2001년 8월 개설. 국내 최대의 군사전문 사이트 · 2014년5월 현재 누적방문자 2억6800여만명. 1일 평균 방문자 9만~10만명 · 1일 평균 페이지뷰 100만~120만 클릭, 회원수 5만6000여명 · TV조선 ‘북한 사이드 스토리’ MC(2013년) · TV조선 ‘밀리터리 시크릿’ MC (2012년) * 조선일보사가 2001년10월 1971년부터 2001년까지 30년 동안의 사내 특종상 수상자를 종합 분석한 결과 30년 동안 유일하게 2차례 호봉 승급한 것으로 파악됨. 한국언론재단 주최 '제 1회 언론인 홈페이지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유 기자는 12일 인터뷰에서 "올해는 상복이 많다"고 멋적게 웃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90년대 이래 이뤄낸 양적 성장에도 불구, '전문화'는 우리 언론의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은 기자들을 부서별로 순 환시키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 역시 각 분야를 두루두루 거치지 않으면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문기자 양성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자들 스스로가 전문기자로의 길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회사 역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여 년간 국방부를 출입하며 군사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축적해온 조선일보 유용원(39) 기자의 사례는 전문기자를 꿈꾸는 평기자 및 기자지망생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고 있다. 유 기자는 최근 한국언론재단 주최 '제1회 언론인 홈페이지 대회'에서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각종 군 관련 자료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용 원 기자의 군사세계'(bemil.chosun.com)는 작년 8월 개설이래 총 방문객 150만 명을 넘어섰고, 하루 평균 6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군사분야의 인 기사이트가 됐다. 유 기자는 12일 오전 국방부 민원실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컴맹 수준'의 컴퓨터 실력으로 군사전문 웹사이트를 개설한 배경 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 ▲국방부를 출입하는 동안 지켜본 군사문화 ▲군사보안과 국민의 '알 권리' ▲<조선> 기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했다. 다 음은 유 기자와의 인터뷰 전문. - 수상을 축하한다. 올해는 한국언론대상 신문보도 부문상을 받았고, 사내 특종도 여러 차례 했다고 들었는데... "올 들어 이상하게 상복이 있는 것 같다. 사내 특종상은 올해 5번 정도 받았다." - 군사분야 정보를 다룬 웹사이트를 개설한 동기는? "처음에는 홈페이지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박하게 시작했다. (작년 8월7일 개설할 때만 해도) 나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도 구분 못하는 컴맹이 었다. 국방부를 출입한 게 93년 3월부터이니 햇수로는 올해로 10년째 된다. 그런데 한국군의 무기에 대한 기사를 하나 쓰려고 해도 관련사진을 구하 기 힘들었다.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그 동안 모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군사분야 애호가들과 정보를 공유해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큰 반응이 왔다." - 방문객은 어느 정도 들어오나? "하루 평균 6200명 정도가 꾸준히 들어온다. 총 방문객 수는 153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10월1일부터 웹사이트 접속 자격을 등록회원으로 전환했다. 회원은 현역 군인은 물론, 학생과 회사원 등 다양한 분야의 군사매니아들로 구성되어 있다.""극우 편향으로 운영했다면 공격 많았을 것" '유용원 기자의 군사세계' 웹사이트 초기화면을 배경으로 국방부 민원실 커피숍에서 인터뷰에 응한 유용원 기자.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회원제로 전환한 이유는? "대중성 확보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회원제로 하는 게 도움이 된다. 회원제로 전환하 고 나서도 올라오는 글이 줄어들지 않았고, 등록회원도 하루 50∼100명 정도씩 꾸 준히 늘고 있는 편이다. 비실명제로 놔두니 무차별하게 욕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분위 기를 흐리더라. 웹사이트에 미국인이 영어로 글을 올렸는데, 그것에 대해 시비를 거 는 사람도 있었다. 작년에는 ROTC 출신 차원양 예비역 소장이 육사 출신을 우대하는 진급할당제도를 비판한 것을 놓고 네티즌들이 육사 대 비육사로 나뉘어 비방전이 벌 어지기도 했다. 비실명제로 할 때는 일일이 욕설글을 지웠는데, 실명제 전환 후에는 일이 많이 줄었다.(웃음)" - 홈페이지 주인을 비방하는 글도 올라올 텐데 어떻게 대응하나? "속으로는 막 끓어오르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고... 드라이하게 대응한다. 첨언하면, 지만원씨처럼 극우적으로 편향된 방향성을 가지고 사이 트를 운용했다면 네티즌들의 공격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 자신은 물론, <조선>에 대한 의견도 원색적인 비난만 아니면 살려놨다. 안보 문제에 대해 열린 시각을 견지했기 때문에 사이트가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군사기밀로 분류될 수 있는 자료가 웹사이트에 올라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나? "신문기사를 쓸 때, (공개적으로 배포된) 국방백서에 담긴 내용까지도 '군사보안'이라며 빼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까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와 관련, '군사보안'이라고 어필해온 경우는 2번 밖에 없었다. 군이 지켜야 할 보안사항을 흘리고, 흘릴 수 있는 보안사항은 군이 거꾸로 움켜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비밀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회가 닿으면 논문을 하나 쓰고싶다." - 지난달 5679부대 한철용 소장이 국정감사에서 블랙북(대북감청 일일보고서)을 꺼내든 행위를 놓고 '군사기밀 유출' 논란이 일었다. "한 소장에 대해 특히 내가 만나는 예비역 군인들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한 소장이 털어놓은 내용은 큰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미국 국가안?릴?NSA) 국?揚?그런 일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유 기자 자신도 "정보사령부와 5679부대 사이의 갈등으로 40여일간 정보공유가 중단됐다"는 기사 (<조선> 10월9일자 1면)를 썼는데, 이 또한 기밀 유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정보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 시스템을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아주 터무니없는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군이 도감청과 사진촬영에 의존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런 일을 하는 5679부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사가 대단한 비밀을 담고 있었다면 기사가 나간 후 정부에서 난리를 쳤을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83학번)를 졸업한 유 기자는 90년 2월 <조선>에 입사한 후 그해 8월부터 93년 1월까지 <월간조선>에서 근무했다. 유 기자가 <월간조선> 92년 12월호에 특종 보도한 '220명의 하나회 회원 명단'은 이듬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대대적인 군 사조직 척결로 이어지게 된다. "군사보안에 대한 개념정립 필요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나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군 내부인사를 통해 명단을 입수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시작한 일인데 나중에 '반(反)하나회 세력이 <조선> 기자에게 일부러 명단을 준 게 아니냐? 하는 정치적 음모설이 나돌기도 했다." - <조선>이 YS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를 많이 해 김영삼 정권 출범에 기여했다는 정황을 고려하면,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 훨씬 나이 많은 선배들에게 명단을 주지, 왜 새파란 젊은 기자에게 줬겠는가? 그러나 이후 국방부에 죽 출입했으니 지금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지금 그런 기사를 썼다가는 중요한 취재원과 영영 원수가 될 수도 있고... 기사 쓰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기자가 "정치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느낌을 말하자 그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봐준 게 고맙다"는 대답 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서해교전때 북 경비정 격침시켰어도 확전 안됐을 것" - 거의 10년 동안 '국방부 붙박이'가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출입한 지 2년째 되는 95∼96년이 권태기였다.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당시만 해도 전문 기자 시스템이 정착 안돼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마침 9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에 연수를 다녀올 수 있어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작년 홈페이지를 만든 후 내 일이 지겹다는 생각은 완전히 없어졌다. 홈페이지를 찾는 민간전문가들이 많다. 그들과의 만남이 공부가 되고, 자극도 많이 준다." - 웹사이트의 자기소개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군사전문 기자의 사이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왜 신문기사에는 '군사전문 기자'라는 크레딧이 붙지 않나? "13년차이지만, 아직 평기자다. 내년에 차장대우 심사대상에 오르지만, 선배기자들도 많고..." - 결국 '군사전문 기자'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조선>에는 경제, 의학분야 전문기자가 있다. 회사의 전문기자 운용에 희망을 갖는다. 작년에 획기적인 전문기자제를 도입하려다가 계획이 잠시 중단 된 상태인데, 결국 전문기자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 下载地址(文章中间)
一键制作系统U盘仅需下载到电脑后接上U盘点一下全自动完成。
- 서해 교전과 북핵 문제 등을 취재할 때는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내지 않았나? "<오마이뉴스>에서도 내 기사를 비판한 것으로 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일반 군인들의 정서와 가깝다. 북핵 처리나 경의선 건설도 상호주의에 의거,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호전적 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서해교전 때는 우리 군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북한 경비정을 격침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이 전쟁 분위기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지만, 격침시켰어도 확전은 안됐을 것이다." - 확전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는 확전 위험 때문에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전투기 출동태세를 갖추지 않는 등 확전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 북한의 도발이 우발적이었다는 뜻인가? "계획적인 도발은 맞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준비됐는지는 알 수 없다. 8전대 수준에서는 확실히 준비됐고, 해군사령관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까지 인지하고 전군 차원에서 준비됐는 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확인하기 힘들 것이다." - 성격이 원래 보수적인가? 아니면 출입처(군)에 오래 있어서 군의 정서에 가까워진 것인가? "하하, 복합적으로 볼 수 있다. 한 출입처에 오래 있으면 그쪽 분위기로 갈 수 있다." "허일병 '자살 조작'이 사실이라면 군은 살인자 집단" - 명예를 중시한 나머지 치부를 숨기기 급급하는 군대문화가 총기강도사건이나 각종 군의문사 처리 등에서 국민들의 군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킨 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군인들의 이런 면모를 지켜봤을 텐데, 어떻게 평가하나? "나도 여러 해 지켜봤지만,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총기 강도 사건은 누가 봐도 현역군인이 범인이 아니길 바라는 군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에 한대 맞을 일이 2∼3대 맞고 끝난 것이다. 그러나 중령급 이하 젊은 장교들은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바꾸는 분위기다." - 허원근 일병 사건 역시 군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허원근 사건에 국한하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보다) 군 특별조사단 발표가 사실에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상당한 시간 차를 두고 3발의 총격 을 입은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등 허 일병이 타살됐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의문사위원회의 발표대로라면 상관들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했다는 것인 데, 이것은 군대가 살인자 집단이라는 얘기다. 연루자가 10명이 넘는데, 80년대의 군대가 그 정도로 썩었을까? 일관되게 타살을 증언하는 사람은 1명 이다. 물론, 양심적인 한 사람의 말이 사건의 실체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지만...." - 웹사이트에 '안티조선'적 시각의 글도 많이 올라올 듯 한데...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나눌 경우 <조선>이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분류될 수 있지만, <조선>이 가장 오른쪽에 있다? 사안에 따라(case by case)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역시 사안에 따라 비판에 공감하기도 한다. 지난봄에 차세대 전투기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내 나름대로는 중립적인 기사를 쓰고자 했 는데, 공격을 많이 받았다. 신문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미국 의 F-15K로 기종이 거의 확정된 후에 보잉사가 거의 전 매체에 기사 형태의 광고를 실었다. 그런데 네티즌사이에서는 '<조선>에 보잉사 홍보하는 기 사가 실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똑같은 광고가 <한겨레>에도 실렸는데, 왜 <조선>만 그런 오해를 받아야 하는가?" "웹사이트는 군인과 안보전문가, 군사매니아가 함께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장으로 키울 터"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중학교 시절부터 무기에 관심이 있었다는데, 취미가 직업이 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게 아닌가? 만약 국방부 출입기자가 아니라면 뭘 하고 있을까? "취미가 직업이 됐으니 좋을 것 같지만, 그 때문에 순수한 취미로서의 즐거움 은 없어졌다. 그래서 안타깝다. 기자가 안됐다면 교직 같은 걸 하지 않았을까? 주변에서 공부하고 강의하는 스타일이 맞다고 한다." - 웹사이트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으면 기자 일을 그만둘 수도 있지 않나? "하하, 웹사이트가 수익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그만둬도 할 일은 있는 정도로 생각해야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우리 홈페이지에 수준 높 은 글을 올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돈이 될 지 안될 지는 몰라도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개인적으로 만든 웹사이트가 상까지 받았으니 앞으로 운영하는 데 부담을 느낄 법 한데?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말한다면... 군사관련 사이트는 여럿 있지만, 군인들과 안보전문가, 군사매니아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 없다. 여기 에 더해 장차 한반도의 안보와 통일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될 텐데, 해외 전문가들도 함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이지만, 그 단계가 되면 웹사이트 명칭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유 기자의 구상대로라면 10년 후에는 더 이상 '유용원 기자의 군사세계'라는 웹사이트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묵묵히 '군'이 라는 한 분야에 뿌리내린 그의 집념을 생각하면 유 기자에게 따라붙는 '국방부 출입'이라는 수식어는 앞으로도 떼기 힘들 듯하다. "18개월 방위로 군 생활은 엄청 편하게..." ??사전?袖愍?'작은 비밀' 유 기자는 18개월 단기사병(일명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그것도 '엄청 편하다'는 학군단 방위로. 시력이 나빠서 방위 판정을 받았다는 게 유 기자의 설명인데, 유 기자의 말로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이를 모르고 유 기자를 처음 만난 사람이 그의 빼어난 군사지식에 놀란 나머지 유 기자를 '체계적으로 군사학을 공부한 장교 출신'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유 기자는 "초년 기자 라면 군 관계자들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 위치는 아니니까..."라며 피식 웃었다. / 손병관 기자 군사전문 기자로 영원히 남고 싶다 신문기자들이 쉬는 토요일 오전의 국방부 기자실은 한가로왔다. 주인 비운 의자에 듬성듬성 걸린 군복 상의가 다소 긴장을 줄 뿐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흰색 보드 칠판과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엠바고’ 목록. 세어봤더니 무려 8개의 사안. 여전히 ‘보도의 사각지대’ 에 속하는 군 보도의 제약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국방부 출입 8년째에 접어드는 유용원 기자는 이런 속에서도 특종을 유난히도 많이 건진 기자다. 별명도 ‘작은 거인’이다. 그가 월간 조선 근무때 터트린 특종인 하나회 명단 공개 (92년 12월)를 비롯해서 ‘군수본부 포탄 사기사건’(93년 말), ‘KF-16 추락사고 원인은 엔진 결함’ (98년 8월), ‘권영해 전 안기부장 20억원 비자금 조성’, ‘북한 MIG-21기 40대 도입’, 그리고 지난 5월의 ‘주한미군 땅 2,000만평 반환’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것 만도 셀 수 없이 많다. 이 공로로 그는 조선일보 사내 특종상 및 노력상을 9차례나 받아 사 회부내 최다 수상자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그의 최고 작품은 하나회 명단 공개 보도이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 나온 220명 의 하나회 명단 폭로는 3개월 뒤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숙정 바람을 몰고 왔었다. ‘군수본부 53억 포탄 사기사건’도 2주 ?옛?신문들의 1면으로 등장했던 대 특종이었다. 이 보도로 당시 권영해 국방장관과 이수휴 차관이 경질됐고 군수본부가 군수조달본부로 개편되며 ‘율곡사업개선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등 군수조달체계에 대쇄신이 이뤄졌다. 최근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린다 김씨 보도도 어쩌면 공이 그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98년 10월 4일자 사회면에 이미 유용원 기자는 ‘군 정찰기 도입비리 핵심인물은 린다 김’ 제하의 기사를 출고했었다. 이 기사는 린다 김씨와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고위 인사들의 실명을 이니셜로 거론하는 등 최근의 보도내용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유 기자 는 “96년 6월 기종 선정 당시부터 관심을 가졌던 일이었다. 사실관계 확인이나 결정적인 증거물이 없어 후속보도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특종의 공을 경쟁사로 넘긴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기사 욕심’에 취재원에게 인심 잃을 짓을 많이 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군 내에서 ‘보기보다 독하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특히 절친한 사이였던 도일규 전 참모총장과의 악연을 생각하면 몹시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98년 5월 도 참모총장의 동생이 병무 청탁 비리에 연루됐다는 기사를 썼어요. 도 총장이 전화해 ‘유 기자 너무했다. 창피해서 나갈 수가 없다’고 서운함을 표시했어요.” 자신도 그 기사를 쓰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유 기자는 얼마 전에 아들 결혼식에 찾아갔더니 도 총장이 반갑게 맞이하더라고. 그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기사의 날이 무뎌지는 유혹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친분관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으면 기사화 한다는 것이 자신의 원칙임을 밝혔다. “사감에 치우친 기사는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갈등이 많지만 기사화하는 것이 기자로서의 생명을 길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기사 대상이 된 사람도 나중에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신 취재원에 대한 비밀은 끝까지 지킨다. 실제로 하나회 명단 취재 과정을 물었을 때 “그 얘긴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며 입을 다물기도 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그에게 언론계의 끝없는 과제인 ‘국익과 알권리’가운데 어디에 중심을 두는지 물었다. 대답은 “알권리는 최대한 충족시키되 국익에 크게 저해되는 기사는 쓰지 않겠다.”는 것. 유기자는 그러면서 “역대 국방부 출입기자 가운데 아마 나만큼 군 기밀을 많이 유출한 기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군 기밀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군인들도 무엇이 기밀이고 아닌 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3급 비밀 이상 군 기밀만 56만 건이나 됩니다. 군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군 기밀 가운데 불합리하게 분류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의 김용식 공보과장(대령)은 유 기자를 군에 대해 애정을 가진 기자라고 평가한다. “균형잡힌 시각과 함께 군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는 느낌입니다. 국가안보에 필요하다면 기사를 자제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유 기자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국방부 내에서의 그의 해결사 역할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오랜 국방부 출입으로 얻은 연분으로 국방부 직원들의 여론 통로 구실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 얼마 전에는 매일 아침 갖는 국장급 이상의 조찬 간담회로 인한 국방부 직원들의 어려움을 국방부 장관에게 호소해 개선방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는 외부 원고 수입을 주로 영관급 장교에게 밥을 사는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사실 기자들은 장성들을 주로 만나니 영관급 장교를 우습게 대하는 경향이 있죠. 이런 기자 처음 봤다며 놀라는 반응이더군요.” 유 기자는 무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기 전문가’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백령도 해상 호위함상에서의 일이다. 함선의 무기제원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유 기자는 40 미리의 포를 35미리로 잘못 설명했다며 수정해 줘 동료 기자들은 물론 군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공군에서 공식 발간한 비행기 관련 책자에서 사진 설명의 잘못을 바로 잡아 준 일도 있다. 주한미군과 가진 국방부 기자단과의 점심에???미군 장군들이 그의 전문적인 무기 관련 지식에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무기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 시절 즐겼던 전쟁영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것이 무기로 이어지고 신문 잡지에 나오는 무기 사진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신문에 구멍 뚫는다고 혼나면서 수집한 그 자료들은 색이 바랜 채 아직 집에 고이 보관돼 있다. 왜 하필 무기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그냥 재미있어서”란다. 그는 요즘에도 세계적인 군사 전문 주간지인 디펜스 뉴스(Defence News)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ce Weekly)를 정기 구독하고 있고 군사 관련 전문서적을 틈틈히 보고 있다. 국방기자 4년차인 96년 7월에 떠난 1년간의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 연수는 그의 군사 문제 지식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국의 주요 군기지 박물관을 중심으로 주제가 있는 여행을 다녔습니다. 웨스트포인트, 공군사관학교, 세계최고의 에어포스 박물관이 있는 라이트 패터슨 기지 등 10여 곳의 군사 박물관을 찾아 다니면서 많은 무기를 보고 군사 관련 자료들을 모았어요. 공군 장교들도 그렇게 많은 곳을 본 사람이 없다고 놀라더군요” 그는 또한 워싱턴의 내셔널 아카이브(국립자료센터)에 세번이나 들렀다. “맥아더 극동 사령부의 극비문서 등 비밀해제문서를 찾아냈지요. 그 문서에는 휴전 이후 전쟁이 터지면 원폭을 터트린다는 계획도 있었어요. 한반도에서 원폭을 어디에 떨어뜨려야 하고 6발이 터졌을 때의 효과 등에 관한 존스 홉킨스대 연구 결과물을 찾아냈어요.” 이 문서 내용은 월간 조선에 공개된 바 있다. 그는 이 때 복사해 놓은 수천 장의 자료들을 가지고 미국의 대 한반도 군사 정책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이다. 그의 꿈은 군사 전문기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 언론상황에서 가능할 지는 미지수지만 50이 넘어도 데스크가 아닌 군사 전문기자로 남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회사가 전문기자 운용 관련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때가 되면 전문기자직에 신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폭넓은 시야에서 군사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미국 대학이나 전문 연구소에서 안보분야 학위과정을 밟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군사 전문기자의 영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남북 정상들의 만남 속에서 군축 문제가 거론될 것입니다. 주변 4강의 군사력 문제, 남북한 군 사통합, 통일 이후의 적정 군사력 문제도 아직 성급하지만 큰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북한에 내란이 일어나거나 남북한 간에 소규모 충돌이 일어나도 이것은 군사 전문 기자 사안이 됩니다.” 미군 철수 주장에 대한 고민 유용원 기자에게 조선일보 편집 논조에 대한 일부 NGO 세력들의 거센 거부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386세대의 리더로서 가진 개인적 의견을 던졌다(실제로 그는 월간 말 지와 신동아가 선정한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 300명으로 조선일보의 다른 3명의 기자와 함께 선정됐다). “운동권이나 재야세력의 조선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사안에 따라 이해 폭이 각기 다를 수가 있습니다. 국방문제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이 보수적이고 취재원들도 보수적이어서 조선일보의 보수적 성향은 오히려 국민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편입니다.” 그는 이어서 최근 매향리 미군사격장 문제에서 비화되고 있는 일부의 미군 철수 주장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한미 관계의 전환기 속에서 이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회사의 논지, 군 입장, NGO 주장, 여론의 방향속에서 어떻게 보도의 균형을 맞추고 수위를 조절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유기자의 요즘 화두는 건강이다. 조선일보 내에서 3명의 기자가 암 투병을 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사 초기 소주 한병 마시고 병원에 누워 링거 주사를 맞을 정도로 술에 약했던 그가 요즘엔 폭탄주 서너잔 쯤은 거뜬히 마실 정도로 술이 세진 것이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며 이제 건강을 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주간조선 동기생인 정장렬 기자 여동생의 친구를 소개받아 결혼, 현재 초등학교 1년생과 세 살박이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유용원 기자의 군 생활에 관한 아이러니한 사실. 시력이 나빠 방위로 분류됐고 방???×諍???최고의 보직이라는 학군단 방위병 출신이었다는 것. 유기자는 이때 남은 시간을 활용해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군사 전문기자의 직함을 가진 오늘의 유용원 기자는 이렇게 탄생했다 한때 군에 대해선 부정적인 기사는 취재할 엄두도, 취재한 기사를 내기도 어려웠을 만큼 군은 완전한 '성역(聖域)'이었다. 국방부 출입기자 에겐 기자실, 공보관실, 화장실밖에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3실출입기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어 있기도 했다. 군은 아직도 기자들에 겐 취재의 문턱이 매우 높은 곳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군의 어두운 면이 대서특필되고, 기자들이 대부분의 국방부 사무실을 별다른 제지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취재환경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도 군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난 기사에 대해선 무조건 "사실무근이오니 보도에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라고 오리발식 해명을 하는데 서도 어느정도 벗어나 사실보도면 '맞는 기사'라며 공식 확인해 주는 경우도 늘어났다. 또 기자들과 국방부 및 합동참모본부 간부들이 얼굴 을 익힐 수 있도록 차관보급(중장급) 이상 간부들과 출입기자들이 정기적으로 식사를 같이 하는 '기자간담회'제도도 생겼다. 그러나 아직까 지도 군의 취재문턱은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높은 편이다. 적지 않은 군관련 사항이 군사기밀이라는 보호막에 싸여 있어 기자들의 접근 을 거부한다. 국방부 및 합참, 각군의 전화번호는 대외비로 분류돼 있고 어느 출입처의 경우에는 기자들에게 지급되는 수첩에 잘 정리돼 있 는 주요간부들의 집 전화번호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느 나라에든 군사기밀은 존재하고 또 필요한 존재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비밀을 분류해놨다는 지적도 많다. 93년말 현재 군사기밀은 대외 비를 포함 하면 무려 87만건이다. 이중 1급비밀은 5건에 불과하지만 2급 비밀만 23만여건에 달한다. 이렇게 비밀이 많다보니 군관계자들 도 어디까지가 비밀인지 헷갈리고 보안의식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군의 보안관계자들도 "문서작성자들은 뒤에 괜히 골치아픈 일이 생길 까봐 일단 비밀로 분류해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재산공개 주관 정부 부처와의 협의에서 국방부는 군사기밀 유지를 명분으로 결국 재산공개자들의 직책은 밝히지 않기로 합의하는 데 성공 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공보관실을 통해 출입기자들에게도 군사기밀 유지 차원에서 이들의 직책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국방부가 내세운 명분은 중장 가운데 주요 야전지휘관인 군단장들이 많은데 이들의 직책을 밝힐 경우 중요 군사기밀인 군단 숫자가 드러나 북한에게 엄청난 군사정보를 유출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단 숫자는 전혀 비밀이 아니었다. 국방부가 매년 공식적으로 발행 하는 '국방백서'(94년판)는 우리 육군의 군단숫자가 11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사단숫자까지도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선량한(?)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국방부의 요청을 수용해 군단장들의 직책을 밝 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군의 권위의식과 보수성도 취재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군관계자들은 우선 출입기자들의 경력과 나이를 따지는 편 이다. 기자경력이 7∼8년을 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홀대'를 당하기 쉽다. 과거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차장급이나 차장급에 가까 운 이른바 고참기자들이었으며 군은 이같은 출입기자 풍토에 익숙해져 있다. 직업군인들은 또 고급장교, 특히 장군들에 대해서 상당한 예의를 갖추기를 바란다. 5공 시절 한 장성이 기자실에 브리핑을 위해 내려왔는데 그때 한 기자가 탁자위에 발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장성이 "무례하다"며 호통을 쳤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출입기자가 각 언론사의 대표로 나와 있다는 인식의 부재도 직업군인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각 언론사의 대표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기자들을 한 개인으로만 바라보려 고만 하고 이에 따라 나이와 기자경력을 따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군의 엄청난 '덩치'도 국방부 출입기자를 힘들게 한다. 현재 군의 총병력은 65만5,000여명. 예산은 정부 전체예산의 23%인 10조753억원(94년도)에 달한다. 93년말 포탄도입사기사건으로 문제가 된 국방부 조달본부(구 군수본부)가 집행하는 예산만 5조8,000 억원(94년도)으로 웬만한 정부 부처의 1년 예산을 훨씬 능가한다. 국방부는 또 △전략 △작전 △정보분야 뿐 아니라 △건설 △법부 △보건 등 거의 모든 행정부 기능을 포괄하고 있어 '소 행정부'라는 별명 이 붙어 있을 정도로 업무 범위가 광범위하다. △군사외교와 대(對)주변국 전략 △주한미군 및 유사시 미 증원군(增援軍)문제 △북한 핵문 제 등 외무부의 성격을 띤 사안도 있고, 방위산업과 기타 군납문제 등 경제 부처의 사안도 갖고 있다. 또 매년 수천명의 장병이 안전사고 등으로 죽거나 다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 그 만큼 국방부장관이나 출입기자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93년 발생했던 경기도 연천군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의 포탄폭발사건(20명 사망) 같은 대형사고 뿐 아니라 예비군 훈련중 공포탄을 쐈다는 데 실탄을 맞고 사망한 94년 5월의 세종대생 사망사건처럼 작지만 '황당한'사건 이 많아 군관계자들과 출입기자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달리 보면 국방부 출입기자는 그 만큼 다루는 범위가 넓고 기사의 소재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또 이 넓은 분야중에서는 아직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미개척 분야가 남아 있어 기자라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분야가 아닌가 한다. 필자가 군사전문기자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군사전문기자는 우선 전략, 작전, 군구조 및 지휘체계, 무기체계, 전사(戰史) 등에 밝아야 할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군 인맥과 장병들의 생활실태 및 의식구조, 육·해·공 각군의 정서 등 군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소프트웨어'를 알아야 명실상부한 군사전문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요 분야별로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을 정리해 본다. 1) 장병들의 의식구조와 군 인맥 군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낮아짐에 따라 직업군인에 대한 인기도 떨어지고 있다. 특히 신정부 출범 이후 군에 대한 사정(司正)은 군내 사조직 제거와 비리 척결이라는 긍정적인 효과 외에 직업군인들의 전반적인 사기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현역장교들은 일반 국민과 언론이 일부의 일을 마치 군 전체의 일인 것처럼 매도하고 확대 해석한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직업 차제에 대한 회의까지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사관은 물론 장교들까지 조기전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골적으로 "처자식 때문에 할 수 없이 군대생활을 하고 있다."고 푸념하는 장교들도 없지 않다. 이같은 실태를 반영하듯 각군 사관학교의 인기도 떨어져 93년엔 육군사관학교가 입학생의 질저하 방지를 위해 정원보다 적은 인원을 선발. 사실상 첫 정원 미달사태를 빚기까지 했다. 장교들은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 뿐 아니라 군 내부의 과도한 통제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신정부 출범 이후 군은 각종 사고방지를 최우선시하면서 구타사고나 대민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연대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분 지휘관들이 훈련보다는 사고예방을 중시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맞고 있으며 중대장이나 대대장급 등 일선 지휘관들은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잇는 실정이다. 94년 9월 발생한 육군 53사단 장교탈영사건은 이같은 실정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세태 변화에 따른 사병 행태의 변화도 지휘관들을 과거보다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답답한 군대문화의 맹목적인 수용을 강요하던 과거의 지휘방법은 현재의 이른바 '신세대 사병'들에겐 통하기 어렵게 됐다. 지휘관이 사병들의 바이오리듬가지 신경쓰는 등 어떻게 보면 사병들의 눈치를 봐가며 부대를 이끌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사회의 문화수준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데 군대 후생복지시설의 개선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지휘관들의 지휘를 어렵게 한다. 요즘은 시골에서 조차 구경하기 힘든 재래식 화장실이 아직 최전방부대엔 적지 않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군과 사회의 엄청난 격차를 잘 설명해준다. 따라서 군장교들을 접할 땐 이처럼 어두운 현주소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육·해·공·해병대 등 각군의 문화와 정서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현재 육군은 병력면에서 해·공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고, 해·공군은 이에 따른 '소군(小軍)콤플레스'에 젖어 있다. 즉 국방정책이나 예산배분 등이 항상 육군위주로 돼 있고 해·공군은 찬밥신세라는 것이다. 이같은 해·공군의 콤플렉스는 약자가 공연한 피해의식을 갖고 억지주장을 펴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과거 국방부가 '육방부(陸防部)'로 불렸을 정도로 육군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한때 육군참모총장은 해·공군 참모총장은 물로 국방부장관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다. 또 실제로 육군장교들을 만나보면 육군 본위의 생각을 하는 면이 발견되기도 한다. 유사시 해·공군은 미국이 지원해 줄 것이므로 한국군 전력증강의 방향은 우선 지상군 위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이는 현실적인 면에서 일리가 있지만 일본, 중국 등 주변 4강 사이에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해 볼 때 극복해야 할 논리라는 지적이 많다. 한편 해군 장성에 대해선 장성이라 부르지 않고 '제독'이라는 호칭을 쓴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이다. 총 병력의 80%를 차지하는 육군은 그 덩치 만큼이나 사정이 복잡하다. 현재 육군의 장교는 크게 육사 출신과 ROTC(학군사관후보생)·3사·갑종 출신 등 비육사 출신으로 크게 나뉜다. 처음에 소위로 임관할 때에 비육사 출신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지만 계급이 높아질수록 이 비율은 크게 낮아진다. 때문에 육군의 장교를 육사 대(對) 비육사 출신으로 양분해 비교할 정도로 육사 출신들의 힘은 막강하다. 그렇다고 육사 출신들이 터무니없이 독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가장 자주 범하는 오류는 ROTC 문제. 육군에서 93년까지 각 출신별로 배출된 장교수는 △육사 1만4,000여명 △ROTC 10만 4,000여명 △갑종 4만5,000여명 △3사 4만여명 등으로 ROTC가 압도적으로 많다. 때문에 매년 육사 출신 임관자들은 200∼300명에 불과하고 ROTC는 3,000∼4,000여명씩 임관하는 반면 ROTC 출신 장성은 모두 39명(현역 27명 포함)밖에 안돼 ROTC가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돼 왔다. 따라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이제 ROTC 출신들을 우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곤 한다. 그러나 이같은 소위임관자 숫자의 단순비교에는 문제가 있다. ROTC의 경우 소위 임관자 숫자는 많지만 장기복무자??매년 10% 수준에 불과하다. 보통 육사 졸업자와 비슷하거나 이보다 적은 숫자가 장기복무를 ?晝좡磯鳴?한다. 육사 출신들은 과거 거의 전원이 장기복무를 했고 최근 들어 군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서 매년 50여명이 5년간 단기 의무복무를 한 뒤 전역하고 있다. 또 육사출신들은 4년간 합숙을 하며 전문적인 장교 교육을 받는 반면, ROTC는 대학 재학중에 틈틈이 교육을 받다 졸업한 뒤에야 4개월간 본격적인 교육을 받고 임관, 교육의 강도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듯하다. 때문에 ROTC에 못지 않게 3사관학교나 갑종 출신들도 진급에서 배려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3사 출신들은 4개월∼2년제 장교 교육을 받고 육사 출신보다 훨씬 많은 매년 1,000∼1,500명의 졸업생들이 임관했으나 현재 육사 26기와 함께 임관한 3사 1기생 대령은 채 10명도 안된다. 갑종장교 제도는 6.25때 일선 소대장들을 급히 양산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지난 69년 230기를 끝으로 모집이 폐지됐다. 93년 신정부의 군에 대한 사정이 시작된 이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조직 '하나회' 문제도 육군 장교들 사이에 출신별로 미묘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회가 비록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고 각종 요직을 독식했지만 크게 보면 육사 출신자들끼리의 문제다. ROTC나 3사, 갑종 출신들은 대부분 육사 출신들의 내부문제를 군 또는 육군 전체의 문제인양 군 외부에서 관심을 갖는 것에 불쾌감과 함께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군문제에 접근할 때 참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한다. 인사는 다른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에서도 매우 큰 관심사다. 특히 93년엔 군에 대한 사정으로 파격적인 인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군 안팎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나회 숙청으로 음지와 양지가 완전히 뒤바뀐 육군 뿐 아니라 해·공군도 인사비리로 판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회 숙청등 군인사 개혁은 거의 모든 장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나 급격한 변화가 있다보니 어느정도 부작용도 생겼다. 그동안 하나회 회원들에게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아까운 인재들을 발탁한 반면, 능력과 덕망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줄'을 잘서 요직에 등용되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하나회 숙정은 잘못된 것이라는 성급한 반응도 나오고 있으나 '사조직 배제'라는 방향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필자는 지난 92년말 '원간조선'에서 육사 11기부터 26기까지의 하나회원 명단을 완전 공개, 하나회가 육사 20기 이후에도 존재함을 처음으로 확인 보도했다. 당시는 국방장관부터 육군참모총장, 수방·기무사령관에 이르기까지 군요직이라는 요직은 거의 모두 하나회 출신들이 독차지하고 있던 때라서 이들 가운데 "어떻게 이처럼 군을 분열시키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느냐."며 흥분했던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양심적인 일부 하나회 회원들과 수적으로 하나회보다 훨씬 많은 대다수의 비하나회 군인들이 필자를 격려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만 하나회 출신 가운데엔 우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아 이들을 무조건 군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인 만큼 이들을 선별 구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군 당국도 이들을 진급에서 1차에 한해 불이익을 주고 그 다음부터는 공평하게 심사해 선별구제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고, 실제로 94년 소령∼대령 진급 심사에서 육사 출신 사조직인 '알자회'회원들과 하나회원을 선별구제해 이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그러나 비사조직원들인 대다수의 장교들은 사조직원 선별구제에 대해 "당분간은 안된다"고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어 사조직 처리문제는 당분간 계속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군내 정서를 반영하듯 94년 10월 정기 인사때 준장 및 소장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원들은 모두 탈락했다. 이병태(李炳台)국방장관은 94년 4월 중장 이상 하나회 출신 고위장성 10명의 전역조치를 취한 뒤 특별 지휘서신을 내려 "이로써 사조직 문제는 매듭지어졌으며 더 이상 사조직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이 문제가 정말 매듭지어졌다고 보는 장교는 단 한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이 문제가 적어도 10년은 계속 끌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를 '핵폭탄'과 같은 존재로 잠복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전문기자로서 군내 역학관계나 갈등구조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반드시 하나회 문제를 그 배경에서부터 깊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육사 등 각군 사관학교 출신들의 기수는 가능한 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좋다. '김동진(金東鎭)육군참모총장 = 육사17기'라는 식으로 주요 장성들의 출신기수는 암기하고 있어야 "군을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법조기자들이 주요 ???인사들의 고시횟수를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정보·전략·작전분야 정보분야, 특히 대북한 정보분야는 미국과의 관계와 이적행위 가능성 때문에 보안이 매우 강조돼 취재가 쉽지 않다. 북한 관련 고급정보는 거의 모두 미국의 첩보위성과 U-2R 등 정찰기, 통신감청시설로부터 나온 것으로 한국군은 이들 정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보당국의 한 고위장성은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미국측으로부터 얻는 정보는 모두 2급비밀 이상 등급의높은 비밀로 언론 등에 새 나갔을 경우 미 정보당국에서 강력한 항의를 해오곤 합니다. 첩보위성 등 첨단 정보 자산을 우리가 직접 운용하려면 현재의 국방비를 다 쏟아부어도 부족합니다. 따라서 우리로선 미국측이 정보제공의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거나, 현재로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정보제공의 중단을 통보하는 사태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들을 가장 많이 양산하고 있는 통신감청정보는 섣불리 보도됐을 경우 정보의 '소스'가 끊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보 관계자들이 가장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다룬다. 즉 특정 사안에 대한 북한 정보가 보도됐을 때 북한 당국은 출처에 대해 역추적 조사를 하며, 조사결과 자신들의 무전을 엿들은 것으로 판명됐을 경우 무전 교신을 급격히 줄이는 등의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전 모국방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매우 민감한 통심감청 정보를 별 생각없이 얘기해버려 신문에 보도됐는데, 그 직후 북한군의 무선교신이 급격히 줄어들어 한동안 정보 수집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기자들이 통신감청 정보를 보도할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필요로 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대북한 정보의 특수한 보안성 때문에 출입기자들은 북한관련 고급 군사정보들을 외신을 보고서야 처음 아는 '설움'을 당하곤 한다. 93년 5월 북한이 동해안 시험장에서 노동1호의 시험발사에 처음으로 성공했던 것이나, 북한이 대포동 1·2호 등 사정거리 2,000∼3,500km 의 신형 장거리 지대지미사일을 개발중이라는 사실 등도 모두 외신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었다. 국내 언론에 가끔 북한 군사정보들이 특종보도돼도 당국에서 공식 확인을 거의 해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언론이 이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필자는 93년 11월 북한이 노동1호를 고정식이 아닌 이동식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했으나, 당시 국내 언론에선 거의 받지 않다가 1개월여 뒤에 일본 모신문에서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고 나서야 이를 인용 보도했다. 기무사(구 보안사)는 한때 권력의 핵심으로 존재하다가 신정부 출범 이후 인원이 대폭 줄어들고 사령관의 계급이 낮아지는 등 위상이 많이 낮아졌지만 아직도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다. 기무사는 한때 국방장관, 각군 참모총장 등 군 고위인사의 비리나 사행활에 대한 정보까지 챙겨 청와대에 직보하거나 이른바 '존안(存安)카드'에 기록, 장성인사를 비롯한 군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난 93년 신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자리매김으로 이같은 월권행위는 없어졌지만 기무사에는 아직도 각종 군내 정보가 종합돼 기자로서는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는 정보의 '화수분'이다. 군 출신이 집권했던 5·16 이후 6공까지 정치권력의 막후비사를 한움큼 안고 있고, 93년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하나회 숙청등 군 숙청과정에서의 비화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기무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를 할 때는 개별적으로 남의 안목이 없는 곳에서 만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가능한 한 전화로 취재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지난 93년 기무사 취재와 관련해 '뼈아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1980년 부정축재 명목으로 환수된 재산처리와 관련해 한 전직 보안사 요원의 연락처를 급히 알아볼 필요가 생겨 낮에 평상시 알고 지내던 기무사 영관장교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수배를 부탁했던 것이 내부 도청에 걸렸던 것. 당시 필자는 기무사 내부 움직임 등 여러 차례의 민감한 군관련 기사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고, 기무사에선 내부 발설자를 찾고 있는 상태였다. 이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영관장교는 곧바로 내부 발설자로 지목돼 한동안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전화로 통화한 내용에는 비밀사항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그는 단지 필자와의 전화통화가 한차례 잡혔다는 이유만으로 필자의 '디프 스로트(Deep Throat)'로 몰렸던 것이다. 전략·작전 분야도 대부분 비밀로 분류돼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흔히 전략하면 미국·러시아·일본·중국 등 주변 4?諛??사이에 우리가 살아남고 뻗어가기 위한 이른바 대전략을 연상하기 쉽지만 우리 군의 현실은 ??렇?못하다. 군의 대표적인 전략담당부서인 합참 전략기획본부는 대전략보다는 중장기 전력증강방향, 한미군사관계 등에 치우쳐 있다. 그렇다고 우리 군이 장기 전략과 담을 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91년 이종구(李鍾九) 전국방장관은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 통일 과정 및 통일 이후의 한국군 적정 군사력과 대주변국 전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합참, 국방연구원(KIDA) 등의 브레인들로 하여금 본격적인 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통일 이후 한국군의 큰 틀이 처음으로 짜여지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뒤에 정책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못해 '유행병'으로 그칠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93년 권영해(權寧海) 전국방장관의 지시로 '국방개혁 연구위원회(21세기 위원회)'가 구성, 다시 각광을 받게 됐다. 이 조직은 군구조 및 군사력의 중장기 발전방향에 대해 94년말 완료를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2000년대 한국군의 새로운 큰 틀을 짜는 이 작업에선 적정 군사력과 군지휘구조 등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므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작전분야는 어느 나라든지 작전계획은 비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분야다. 현재 한국군이 '북한의 남침에 대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하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신작전계획 5027'이라 불리는 한·미 연합작전계획서이다. 5단계로 돼 있는 이 계획은 북한의 전면남침에 대해 수도권 북방에서 저지하다 전쟁 발발 40∼50일쯤 대규모 미 증원군이 도착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펴도록 돼 있어 이 기간동안 한반도의 초토화가 불가피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전쟁은 미국이 아닌 우리땅에서 이뤄진다는 면에서 한번 심각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한편 위기상황 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데프콘(Defense Condition)'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단계별로 익혀 둘 필요가 있다. 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은 1∼5단계까지 다섯 단계로 분류돼 있다. 3) 율곡사업(군전력증강사업) 및 군수조달분야 93년 감사원의 특별 감사로 비리의 온상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진 율곡사업은 한국군의 전차·항공기·함정 등 각종 무기체계를 조달, 전투력을 증강하는 군의 핵심사업이다. 매년 국방예산의 30∼39%를 차지하고 있으며 율곡사업이 처음 시작된 지난 74년부터 92년까지 18년 동안 모두 24조 2,993억원이나 투입됐다. 이처럼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율곡사업은 한때 용어조차 비밀이라해서 보도를 금기시할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용어까지 비밀이었으므로 그 구체적인 내역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때문에 한국군의 무기조달 분야에 대해선 90년대 초까지도 외신에나 보도되는 완전한 '성역'이었다. 이같은 율곡사업에 대한 비밀의 베일이 많이 벗겨진 것은 93년 감사원의 특별감사 때였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는 율곡사업 전체가 마치 비리의 온상인양 알려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율곡사업은 처음 소요(所要)제기에서 기종 결정까지 결재 도장이 모두 50여개에 이를 만큼 그 절차가 복잡하다. 적어도 외형적인 절차상으로는 비리가 침투할 수 있는 소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견제와 균형' 원칙에 충실하다. 우선 각군에서 "이러이러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소요를 제기하면 각군 본부는 심사를 거쳐 합참에 소요제기를 한다. 합참은 각군의 소요제기를 심의위원회를 열어 우선 순위를 정하며 이 순서에 따라 '합동전략목표계획서(J-SOP)'에 올린다. 이는 5개년 단위로 짜여지는 데 해마다 우선순위가 조금씩 바뀐다. 국방부는 합참에서 2차로 걸러진 군의 소요제기를 '국방중기계획'이라는 5개년 계획에 포함시키면서 마지막으로 거른다.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되면 예산이 배정되기 때문에 사업추진이 사실상 확정되는 것이다. 군수조달 분야도 국방부 조달본부의 94년도 예산이 5조 8,000여억원에 이르는 데서 알수 있듯이 방대하고 복잡하다. 율곡사업 및 군수조달 분야에 대한 기사를 제대로 쓰기 위해선 무기체계 및 군수품에 대해서 뿐 아니라 절차 및 규정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둘 필요가 있다. 안보분야는 다른 분야 못지 않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운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국방분야 보도는 아직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비례해 군관계자들은 전문기자의 부재를 가슴 아파하며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보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몇몇 일간지들에서 신문보도에 대한 독자들의 오류지적을 다루는 '옴부즈맨'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오류지적이 가장 많은 분야중의 하나가 외신으로 들어온 무기?섟瓦?관련된 내용들이다. 국내 군관련 기사 가운데에서도 무기체계와 관련된 내용이 가장 잘못된 경우가 많은 편이다. 장갑차를 전차로, 다연장로켓을 미사일로 잘못 표현하거나 항공기나 미사일의 기종을 잘못 나타낸 경우가 적지 않다. 94년도 기사 가운데 몇가지 사례를 든다. △'패트리어트 192기(基) 배치' (모신문 3월23일치 제목): 192기가 아니라 192발(發)이 맞다. '기'는 발사대를 의미하고 '발'은 미사일 낱개를 뜻한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경우 발사대 1기당 4발의 미사일이 들어 있으므로 48기 192발이라고 표현했어야 한다. △'아파치는 무선으로 유도되는 AGM-114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 16기 … 모델 가운데 TPQ-36은 한국군이 대항공기용으로 보유하고 있어'(모신문 4월25일치): 헬파이어 미사일은 무선으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광선으로 유도되는 레이저유도 미사일이다. 또 TPQ-36은 박격포 또는 장거리포의 발사위치를 역추적해 찾는 대박격포 레이더로 항공기를 잡는 용도가 아니다. △ '남침땅굴 100여개 증설'(모신문 4월9일치 제목): 기사 내용에는 갱도진지로 표현돼 있는데 제목은 땅굴로 뽑혔다. 일반적으로 땅굴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을 넘어 남한 지역으로 어느정도 들어와 있는 형태로 공격용으로 분류 되지만, 갱도진지는 방어용으로 휴전선 인근 북한 전방지역에 구축돼 있어 의미가 다르다. 따라서 땅굴이 아닌 갱도진지로 표현해야 옳다. 필자도 지난 90년 말 '월간조선'에 게재된 걸프전 가상 시나리오 기사에서 미국 M1A1 전차의 주포 구경이 120mm 임에도 105mm 라고 잘못 쓴 적이 있다. 이같은 오류는 각종 첨단 무기체계가 총동원됐던 걸프전에 대한 보도에서 '절정'을 이뤘는데 각 매체들이 무기체계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하루에도 몇건씩의 오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대북한 군사정보가 너무 제한돼 있어 '결과적인' 오보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94년 5월초 러시아 인공위성이 찍은 북한 대포동 미사일시험장 사진. 대포동 시험장은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시험장으로, 당시 미국의 한 방송사가 많은 돈을 들여 입수한 사진을 그대로 받아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가 사진에 별도 설명기사까지 싣는 등 대서 특필했다. 약간 흐릿해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이 사진에는 미사일 시험장과 부두가 나타나 있었으며 사진상의 약간의 검은 부분이 93년 5월 노동1호 시험발사 때 남은 흔적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군정보당국은 이 사진이 대포동 시험장이 아니라 함북 청진항을 잘못 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포동 시험장의 부두는 1개에 불과한데 사진에는 모두 3개의 부두가 나타나 있다는 것. 대포동 시험장보다 북쪽에 있는 청진항은 부두가 모두 3개로 알려져 있다. 군의 사진판독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사진에 나타난 지형, 지물 등의 대포동 미사일시험장이 아니라 청진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명한 외국언론의 경우 각 분야별로 전문기자가 있어 오보를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처럼 잘못된 기사나 사진을 보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94년초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을 대 세계적인 미국의 한 통신사는 지대지미사일인 랜스미사일 사진을 패트리어트미사일이라고 잘못 설명을 붙여 전세계에 타전했다. 이에 따라 이 통신사의 권위를 믿는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랜스 미사일을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라고 잘못 소개하는 오보를 내고 말았다. 4. 군사전문기자의 필요성과 전문성 강화 방안 90년대 들어 냉전의 종식에 따라 군축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군사력 건설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 군사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면서 군사전문기자의 필요성도 점차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반도 안보여건상 군사전문기자의 필요성이 앞으로 오히려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우선 현재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면 북한의 위협 감소에 따른 군축(軍縮)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을 염두에 두고 군축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언론에서도 이 분야의 소양이 있는 기자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또 현재 제1의 적인 북한이 무너져 통일이 된 이후에라도 일정 수준의 군사력은 꼭 필요하다. 러시아 및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을 고려, 대(對) 주변국 전략을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사전문기?悶??몇가지 군사분야에 대한 소양이 요구된다. 군구조, 부대편제, 계급 등에 대한 기초지식은 물론 무기체계, 군수조달, 정보·작전 분야 등에 대한 지식까지 필요하다. 기자들도 대부분 군경력이 있기 때문에 군구조, 부대편제, 계급 등에 대해선 어느정도 기초지식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기자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기체계와 군수조달, 작전·정보 분야다. 군사전문기자는 전문서적 몇권 읽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이나 미국의 저명한 전문기자들을 보면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난다. 현재 일본에서 원로 군사평론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카오루(村上墨·71)씨는 현역기자 시절 군사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관서대(關西大) 법학부 재학중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1948년 북해도 신문사에 입사했다. 61년 퇴사할 때 까지 정치부 기자로서 방위청 및 수상관저 출입기자를 지냈는데 5·16직후 한국에 건너와 김종필(金種泌)씨를 독점 인터뷰하기도 했다. 61년 이후 줄곧 자유기고가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일본 방위의 신구상', '평화국가의 방위론'등 일본 방위정책관련 서적은 물론 '남북한이 만약 전쟁을 일으킨다면', '6,25 전쟁' 등 한반도 안보관련 책까지 저술했다. 일본에선 무라카미 씨의 경우 꾸준히 한 우물을 파 성공한 경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기자들이 군관련 분야를 공부하려 해도 공개자료가 많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관련 저작물이 늘어나 다소 형편이 나아진 편이다. 지난 89년 이후 국방부에서 매년 발행하는 '국방백서'는 사실상 군의 유일한 공식 한반도 안보총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엔 남북한 군사력, 작전술 및 전술, 국방비 지출내역, 한반도 안보환경 등이 담겨져 있다.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는 외국서적으로 영국 IISS(국제전략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Military Balance(군사력 균형)'가 대표적이다. 데이터가 실제보다 뒤늦다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 군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각종 무기체계 현황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 군사전문가들에겐 '성서'처럼 인용된다. 기자들은 물론 웬만한 군관계자들도 골치아파 하는 무기체계에 대해선 영국의 '제인연감'이 대표적이다. 지상무기, 항공기, 군함, 미사일 등 각 분야별로 돼 있는 이 책들의 무기체계에 관한 한 '바이블'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1권당 가격이 15∼30만원에 달해 개인적으로 구입하기는 부담스럽다는 게 흠이다. 무기체계를 공부하고 국제 방산업체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와 함께 주간 또는 월간 군사전문지를 보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군사전문 주간지로는 △영국의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se Weekly)' △미국의 '디펜스 뉴스(Defense News)' 등이, 월간지로는 △영국의 '인터내서녈 디펜스 리뷰(International Defense Review)' △일본의 '軍事評論' 등이 있다. 연간 정기구독료가 15만∼30만원으로 그다지 비싸지 않으므로 한가지 정도는 정기구독해도 큰 부담이 없을 듯하다. 국제안보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선,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에서 나오는 'Strategy', 'Adelphi paper' 등 정기간행물도 틈나는 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방대학원에서 발행하는 '안보총서'등도 국제안보문제 공부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군 문제만으로 시야를 좁혀본다면 군사평론가 지만원(池萬元)씨의 '한국군 어디로 가야하나' 등 국내 전문가들의 서적도 소양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씨의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는 지난 91년 발간됐을 때 율곡사업의 예산낭비 실태등을 처음으로 본격조명. '성역'을 깼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으며 책의 데이터가 비록 오래된 것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 문제의식 중에는 전문기자들이 배울 만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 같은 군사전문서적을 읽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재미가 없을뿐더러 영어가 수준 높은 난해한 형태가 아닌 '골치아픈' 형태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SLCM, TERCOM, TMD 등 알아보기 힘들고 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약어가 전문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전문용어는 특히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군사력 균형'이나 무기 체계 관련 군사전문지, '제인연감'등에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서점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군사전문용어 영한사전을 마련해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 전문기자가 되겠다는 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본인이 아무리 열의를 가지고 군사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한다 하더라도 1∼2년 단위로 출입처가 바뀐다면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군?【??寧?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전문지식만 늘린다면 발이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붕 떠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군사전문기자를 만들기 위해선 각 언론사가 기자들이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국방부를 적어도 5년이상 장기출입할 수 있도록 하며, 적정한 시기에 외국 연수 및 칼럼리스트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는 제도적인 배려가 필요할 듯하다. 필자는 이와 같이 군사전문기자가 되고자 하는 본인의 노력과 언론사측의 의지가 결합돼야만 진정한 군사전문 대기자가 양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럴 경우에만 너무 비판만 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치켜세우기만 할 수도 없는 복잡하고 중요한 존재인 군의 논리를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벗어나 리드까지 할 수 있는 노련한 군사전문기자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고, 충분히 길게 못 해서 미안해요.” 지난 5월 8일, 1시간 20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가 한 말이다. 바쁜 화요일 낮 시간을 내주면서도 그는 더 인터뷰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했다. 급히 국방부로 갈 채비를 하던 중에도 “아, 책에 사인해드려야지”라며 기자를 살뜰히 챙겼다. 군사전문기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유 기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다소 공격적이거나 위압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는, 너무나 소탈했다. 강한 어조로 기사를 썼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최초와 최고.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를 가장 쉽게 표현하는 수식어다. 그는 최초로 군사전문기자의 길을 갔다. “유용원을 모르면 군인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사전문기자의 최고(最高)다. 동시에 햇수로만 25년째 국방부를 출입하는 최고(最古)의 기자다. 조선일보 내 최다특종상도 기록 중이다. 그의 웹사이트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5월 26일 기준으로 누적방문자 3억 7천만 명을 돌파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유투브 채널 구독자는 5만 5천 명이다. 많이 본영상은 조회수 100만 건이 넘기도 한다.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도 4만 2천 명에 달한다. 어떤 기자도 온라인에서 유 기자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다. 그에게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가 알맞은 이유다.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 씨 페이스북). 유 기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군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영화도 서부극이나 전쟁 영화를 좋아했다. 그는 “어릴 때 관심을 가져도 보통 나이 들면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저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계속 관심이 있었죠”라며 “만약 운동을 잘했으면 사관학교를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군사에 애정을 가졌던 그는 기자가 된 후 그 애정을 취재에 녹였다. 2001년에는 한국 언론 최초로 프랑스 라팔 전투기의 탑승 취재를 했고, 2008년에는 미국 이지스함 채피의 한국 언론 첫 동승취재를 했다. 이밖에도 군이 향하는 곳에는 유 기자도 있었다. 국내외를 오간 다양한 취재에 그는 “취미가 직업이 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하는 비판도 애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 유 기자는 “비판할 일이 있으면 비판한다. 하지만 절대 사감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군과 국방부, 국방부 장관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방부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묵묵히 일하는 군인들을 모욕하거나 군을 비하해선 안 된다”라며 “국방부 장관과 군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의 칼럼에서도 드러난다. 송 장관은 김영철 방남(訪南)에 대한 불쾌감 표현이나 문정인 안보특보에 대한 비판 등 여러 차례 소신 발언을 해 보수층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한·미 연합훈련 시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올 필요가 없다"는 등 현 정부 코드에 맞추는 발언도 자주 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더 한심하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나 군 적폐청산위원회, 시민단체가 군의 존립과 대민(對民) 신뢰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발표나 주장을 펴는 데도, 국방부가 제대로 반박한 적은 거의 없다. 이런 국방부와 군이라면 앞으로 정권 핵심부가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킬 체인(Kill Chain)' 등 전력증강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고 해도 과연 '노(No)'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軍, 표범 만든다더니 고양이 될 판. 조선일보 2018년 4월 11일자 기사.) 군에 대한 애정은 그가 한 보도에서도 볼 수 있다. 유 기자는 '낡은 군인아파트 수두룩...軍사기 저하'기사에서 직업 군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다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관급 장교와 부사관들이 15평형과 18평형 군인아파트에서 살았다. 아파트도 지은 지 20~30년 된 아파트였다. 유 기자는 “딸과 아들이 있으면 방을 하나씩 주고 부부는 마루에서 자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라며 “해당 보도 뒤에 한 장교 부인은 울면서 고맙다고 전화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유 기자는 이 보도가 가장 보람찼던 기사 중 하나라고 꼽았다. 이밖에도 군 장병 내무반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의미 있던 보도라고 말했다. 유 기자는 애정을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한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유용원의 군사세계’와 기조실장으로 활동하는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이 증거다. 유 기자의 웹사이트와 포럼에는 한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멍석’이다. 다른 싱크탱크 단체가 전문가로만 구성됐다면, KODEF는 네티즌까지 포함한다. 그는 군사에 관심 있는 군 관계자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큰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사이트 회원들이 오프라인으로도 자신의 관심을 넓혀갈 수 있는 ‘멍석’이 KODEF인 것이다.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일까. 랭키닷컴에 따르면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군대 커뮤니티 중 지속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는 철저히, 보도의 책임도 철저히 “무덤까지 가져갈 겁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어떻게 하나회 명단을 입수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유 기자는 1992년 월간조선에 근무할 때 하나회 명단을 최초로 보도했다. 유 기자는 취재원 보호를 철저히 한다. 그가 상대하는 취재원 다수가 기밀에 민감한 군인인 만큼, 취재원은 ‘무덤까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보호한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최우선으로 놓을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도에선 어떨까. 유 기자는 한 기사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보도다. 그는 2004년 1월 26일 '한국, 核추진 잠수함 개발키로'라는 보도를 했다. 당시 유 기자는 한국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을 포착했다. 군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는 이를 공론화해,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바랐다. 하지만 보도 이후 핵추진잠수함 논의가 중단되면서 그는 비난을 직면해야 했다. 일부 전문기자들은 당시 논의는 원래 중단될 예정이었는데 유 기자의 탓인 것처럼 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유 기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움이 남는 보도”라고 했다. ▲ 유 기자의 재킷에 꽂힌 KSSN 배지. KSSN. 그의 재킷 한쪽에 자리한 배지에 쓰인 문구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약자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는 한국형 원자력잠수함 건조에 대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유 기자가 실장으로 있는 한국국방안보포럼에서도 꾸준히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유 기자의 책임감이 취재원 보호뿐만 아니라 보도에서도 나타나는 부분이다. 유 기자의 신분은 취재기자다.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겸하고 있지만 차장이나 부장과 같은 직함을 갖진 않는다. 1990년 2월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취재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좀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전문기자’의 길이 더 생명력 있다고 답한다. 유 기자는 “부장이나 국장 모두 2년 이상 못한다”라며 “전문기자는 평생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후배들에게 전문기자의 길을 추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유 기자는 언론사를 준비하는 후배들과 입사한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당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분야,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전문기자로 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종합일간지에선 입사 후 부서를 돌아다니는 사례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93년부터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는 유 기자의 경우는 상당히 특수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유 기자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회사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군사 문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의 도발, 안보의식, 방산 비리, 병역 비리, 군 인권 문제, 한미동맹, 군 개혁 등등. 그러다 보니 군사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정리해줄 존재가 절실해집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 역할을 할 사람 중에 유용원이 두드러집니다. (…중략…) 그러기 위해서 유용원은 그 특유의 열정과 신뢰로 가일층 정진해야 하며, 우리 사회는 그를 전문가로서 진지하게 대접하고 또 십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 중 정두언 전 의원 추천사) 정두언 전 의원은 한국 사회에 유용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행보는 여태껏 기자들이 가지 않은 길이다.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이는 기자. 보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웹사이트와 포럼을 지휘하는 기자, 국방부를 최장기간 출입하고 있는 기자 등. 한국에서 군사 분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군사 분야를 다룰 그의 존재감도 마찬가지다. 전문기자의 길을 보여주는 첫 모델인 그의 길도 미래 후배들에게 중요하다. 유 기자는 오늘도 최장수 국방부 출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군사전문기자의 역사를 매일 쓰는 중이다. 지금 한국 언론엔, 그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下载地址(文章结尾)
一键制作系统U盘仅需下载到电脑后接上U盘点一下全自动完成。